2018년 9월 8일 토요일

결혼후 첫 부부싸움을 기억한다.


결혼후 첫 부부싸움을 기억한다.

그것은 요코하마로 이사한 후 중고가전상가로 냉장고와 세탁기 세트를 사러가던 언덕길이었는데, 
날이 더워서 물을 마시다가 내가 정수기가 필요하다고
그것을 사러가자고 하면서 시작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정수기는
수돗물을 간편하게 정수해주는 브리타 주전자로
엄청나게 팬시하거나 비싼것을 말한것도 아니었고
아마도 한 3-4천엔정도 하는
그런 정수기를 이야기 한 것이었는데,

아마도 이케아에서 가구를 대량으로 사고,
냉장고와 세탁기를 사는 등
의외로 지출이 많아지자
외벌이 마일스가(나는 여전히 학생이었다) 아세리를 느꼈던 것 같다.
(아세리는 일본말로, 굳이 번역하면 초조함같은 느낌이다.)

암튼 그래서 중고가전상가를 찾아가던 언덕길에서
우리는 언쟁을 하다가
내가 그만 울어버리고 만 것이다.

솔직히 내가 생각하는 결혼의 모습이란 
땀을 뻘뻘흘리며 언덕길을 올라가서
중고세탁기를 사고
간이정수기를 가지고 싸우는
그러한 이미지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뭔가 분해있었고 억울했었고
우리엄마네 집에는 당연히 깨끗하고 멋진 정수기가 있는데
이 남자랑 살게되니 이제 물도 내맘대로 먹을수가 없게 되다니
하면서 엉엉 통곡을 하였다. 

마일스는 너무 당황하면서
나를 달래주었는데
우선 세탁기랑 냉장고를 사고나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였던 것 같다.
(혹시 이 남자는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있었던걸까? )
나는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울음을 참으려고 깊고 짧은 숨을 들이마시며
이 알수없는 억울함을 진정시키려고 하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같은 날인지 그 다음 날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우리가 요코하마역 또는 카와사키역?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주문하면서
웨이터가 레몬이 들어간 얼음물을 줄때
내가 다시 그 문제를 끄집어 냈던 것이다.

분명 이 얼음물은 정수기에서 가져온 물이 틀림 없다!
고 나는 주장하였으며
마일스는 그럴리가 없다! 식당에서는 그냥 수돗물을 쓴다!
고 반박을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국 지나가던 웨이터를 불러
그 점을 물어보게 되었는데
허거걱
결론의 나의 패배, 그의 승리였던 것이다.

나는 도저히 이 상황을 납득할 수가 없어서
정수하지 않는 물을 식당에서 주다니
하며 어이를 상실하였지만
마일스는 생글생글 기뻐하면서 내눈을 쳐다보았다.
그때의 그 생글생글한 표정이란! 쳇

하지만 결국은 어찌저찌하여
브리타 정수기를 사서 물을 마시게 되었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는 기억이 없다.
내가 몰래 샀을리는 없고(자존심상!)
그렇다면 그냥 둘이가서 같이 샀던 걸까?

어쨌든 우리는 타협하는 법을 하나 배웠고(내가 원하는 쪽으로 ㅎㅎ)

마일스도 이런 된장녀와 결혼을 하다니
라고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미국에서는 수돗물을 그냥 마시고
일본에서도 그것이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고(후쿠시마지진 전까지만 해도)
유독 한국에서만 수돗물을 마시는 것에 대해 유난을 떨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례로, 마일스는 학회가 있어서 제주도에 간 적이 있다고 하는데(우리가 사귀기 전이다)
그때 호텔에서 수돗물을 마시고 엄청나게 배탈이 나서
이틀이상 고생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좀 쪽팔렸지만,
왠지모르게 창피해하면 안될것 같아서
원래 수돗물 그냥 먹으면 안돼
라고 당연한듯 말을 했었던 것 같다.

흠, 그러니까 결국은 한국의 수돗물 사정이 문제였던 것일까?

물론, 우리가 작년에 이사온 우리집의 수돗물은
파이프의 문제인지 집이 낡아서 그런지
연못맛이 난다.
왠지 잉어가 살고 있을것만 같은 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튼 라이트한 연못맛 flavor를 느낄수있다.

마일스도 그 점에는 동의하여
우리는 여전히 브리타 정수기 주전자를 사용중인데

결국 수돗물은 음용이 가능하도록 처리되어야 하는게 맞는데
나는 괜한걸로 엉엉울고 괜한걸로 시비를 걸었었구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잠이 안오는 이밤에 드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잠이 안 오는데
마일스는 지금 위층에서 쿨쿨 잘도 자고 있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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