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서전을 쓴다면 봉봉이와 네씨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참고로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봉봉이는 우리집 강아지(2012년생 추정)
네씨는 우리집 고양이(2015년생 추정)이다.
이름은 쉘터에서 지어진 그대로의 이름을 따와서,
봉봉이에게는 마크라는 멋진 이름이 있는데,
나는 주로 김봉봉이라고 부른다.
신봉봉이 아니라 김봉봉이어야만 할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남편의 풀네임은 마일스 리차드 콜만인데,
친구들끼리 농담삼아 마서방이라고 불렀으며
또는 분당 고씨로 귀화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등의 우스개소리가 있은후로
나는 가끔 네씨를 고네씨라고 부르곤 했다.
마일스는 사실 고양이를 싫어했다.
근데 내가 자꾸 쫄랐다.
고양이한테 알러지가 있단다.
흠.
그래서 우리는 쉘터를 자주 방문하였다.
귀여운 고양이도 볼겸 귀여운 강아지도 볼겸
그리고 사실은 마일스가 정말 고양이알러지가 있는지가 궁금하였다.
우리가 봉봉이를 입양한 곳은 산마테오 벌링게임에 있는 휴먼소사이어티였다.
강아지가 너무너무 갖고싶어서
정말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 마일스를 졸라 댔다.
마일스는 처음에는 생각해보겠다고 하더니
이후에 니가 정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고 하더라.
역시 우리 남편님(이럴때만 ㅋㅋㅋ).
그래서 쉘터를 세네번 반복해서 간 후에
우연히도 나의 생일날(2013년 11월 13일) 봉봉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하였다.
다른 강아지들은 너무 컸거나
안 예뻤거나(미안)
색깔이 까맣거나(미안, 엄마가 검은개는 별로란다)
암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한국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말티즈 종류를 기르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쉘터를 적어도 세네번 방문하여 여러번 강아지를 보고있었다.
그냥 강아지들을 보고있는 것 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는데,
그 아이들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아니 행복해보이는 애들도 있었고 아닌 애들도 있었던것 같다.
암튼 강아지들은 대부분 (여기서 내가 강아지라고 부른다고 해서 정말 퍼피 인것은 아니다. 성견도 강아지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에 시적허용이랄까 하하하)
자고 있거나
아니면 짖고 있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거나
똥을 싸거나
오줌을 싸고 있었다.
난감하였다.
어떤 강아지는 너무 프렌들리해서
나의 에너지레벨이 감당할수가 없을 것 같았고
어떤 강아지는 너무 안이뻐서(미안)
내가 잘 키울수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외모지상주의자구나.
암튼, 그러던 어느날, 내 생일날,
마일스가 회사에 휴가를 내고 나와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주었다. 아싸.
나는 사실 매우 우울한 상태였다.
어쩌다 운이 좋게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여
처음 육개월은 어학연수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고 신이 잔뜩 나 있었는데
9월달에 영주권이 나와버렸다.
즉 그말은,,,,,나도 취직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남들에게는 꿈과 같은 영주권이
왜 나에게는 짐과 같이 느껴졌을까.
사실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됐는데 갑자기 나에게 취업비자를 주는 미국정부가 이상하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ㅋㅋㅋ
어쨌든 나도 취업을 할수있구나 라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ㅅㅂ(욕주의), 하지만 행정학을 다시 하기는 너무 싫었다.
박사과정동안 난 정말 나의 0.00001%의 에너지까지
내 논문에 쏟아부었었고
아 정말 그때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사실 지금도 쳐다보지 않는다. 내 논문과 퍼블리시된 저널은
저널에만 수록되어 나의 책장에 진열되어있을뿐이지,
나는 엄마아빠한테 내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저널에 실렸다는 얘기를 한번정도 한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불안했었나보다.
다시 공부하기가 너무 싫었으니깐.
암튼 그래서 너무 우울해서 나에게도 강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는 취업전이고 내가 과연 미국에서 그것도 사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았었고(실제로 이력서를 시월부터 내기 시작하였으나 아무도 응답이 없었다) 너무 절망적이었다.
누구는 고작 2-3달 해보고 왜그러냐고 그랬지만
나는 그게 너무 절박했다.
박사까지 해놓고 전업주부가 될까봐
너무 불안했다.
암튼 이런저런 연유로 나는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었다.
나중에 작은언니 말로는 내가 어렸을때부터
강아지를 너무너무 가지고 싶어했단다.
그랬었나? 싶은데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내 친구중에 푸들 두마리와 말티즈 한마리를 가지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것 같은데.
그아이가 내 떡진머리를 보고 기름공장이라고 놀려서
좀 속상했었지만, 굉장히 유쾌하고 즐거운 아이었다.
(사실 이 아이가 변태1을 본 그 장본인이다. 커밍아웃 미안 친구, 니가 혹 이 글을 볼일은 없겠지만 혹시 불편하다면 말해줘. 글 내릴께)
이름과 성도 기억이 나는데, 사실 100프로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익명인 그 친구의 집에서 어느날 엄마푸들이 아기 강아지들을 대여섯마리나 낳았고, 나는 출산의 순간에는 같이 하지 못했지만, 친구로부터 그 이야기를 너무나도 생생하게 들었던 것 같다.
또한 꼬물꼬물 꼬물이들이 대여섯마리 엄마젖을 빨고
엎어치기 배치기를 하고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 우리집에도 강아지가 있었으면 좋을텐데.
아마도 강아지가 집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은 꽤 어렸을때 부터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도 개를 싫어한다고 하고
아빠는 공동주택인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 것은 규칙위반이라며 안된다고 하였다.
우리아빠는 아마 그때 동대표같은 이상한 직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암튼 그래서 나의 삼일천하는…이 아니고
나의 강아지 쪼름 사건은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작은언니가 나에게 말을 할때까지 나는 내가 어렸을때 강아지를 가지고 싶어했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하지만 내 욕망은, 내 욕구는, 거기 그대로 있었나보다.
그냥 참고 있었던거지.
우리 착한 마일스와 결혼할때까지 ㅋㅋㅋ
마일스 너무 고마워.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안되지. 왜냐하면 나에게는 마일스가 싫어하는 고양이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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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나빼고 다 고양이가 있을 것 같은 그런 나날들이 지속되었다.
아마도 도율이가 고양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다는 얘기에서 나의 고양이를 향한 뽐뿌질은 시작되었던 것 같다.
도율이는 나와 엄청 친하게 지낸 고등학교때 친구이다.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을 통틀어 같은 문과반이었고, 단짝처럼 지냈다.
요새는 많이 연락을 못하지만(내가 유학을 가게 된 후로 잘 연락을 못하게 되었다. 미안 도율) 트위터에 그아이가 고양이식빵사진을 올릴때마다 박장대소하며 보곤 하였다.
한편, 도율의 아버지는 금연자였다. 담배를 폈다가 끊었댄다.
나는 담배를 끊는 사람하고는 친구를 하면 안된다는 명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혹 도율의 아버지가 매정한 사람이 아닐까 걱정을 하였다.
하지만 도율의 아버지가 처음과는 달리 고양이를 그렇게 좋아하더랜다.
그리고 도율이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 같았다.
흠.....금연자를 현혹할만한 고양이, 너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냐
너무 궁금하였다.
너무 궁금하였다.
너무 궁금하였다.
트윗질을 하고, 오유의 동게를 가고, 네이버에서 고양이 사진을 찾아보고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 아 나는 고양이가 필요해 라고 생각하였다.
이유는 여러가지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우선 봉봉이가 너무 외로워한다.
그때 나는 첫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마일스도 아침일찍 회사를 가서 저녁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봉봉이와 놀아줄 시간이 거의 없었다.
이것은 예측미스였다.
봉봉이와 하루종일 같이 있을줄 알았는데
봉봉이를 데리고오자마자 인터뷰가 마구마구 잡히더니
직장이 생겨버렸다.
역시 우리 봉봉이는 복덩이였어.
암튼 그런데 문제는 봉봉이의 배변문제였다.
이 아이는 고집이 진짜 쎄서 실내에다가 쉬를 안한다.
그리고 응가도 안한다.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마일스는 '왜 니가 미쳐' 하는데
나는 쉬를 참는것도 응가를 참는것도 공감이 되어서 견딜수가 없었다.
(참고로 나는 장이 약해서 한때는 서울시지하쳘역 화장실의 위치를 거의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약간 과장 포함해서)
게다가 쉬를 자주 참는 강아지는 이후에 늙어서
방광염등에 걸릴수 있다고 한다.
우리집 강아지는 당시 한두살 이었지만
그래도 세살버릇이 여든간다고
아이의 배변버릇을 고쳐보고 싶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심지어 봉봉이의 원망섞인 얼굴과
분노에 찬 복수를 경험하였다 ㅋㅋㅋ
(배변유도 스프레이, 배변유도 꼬깔콘, 배변유도 피패드, 배변유도 가짜 잔디 안해본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강아지를 넓은 케이지안에 두고, 문을 잠궈놓고, 그 옆에다가 배변판을 놓으면 강아지가 어쩔수없이 쉬를 하게되고, 그때 폭풍칭찬을 하면 된다는 블로그를 읽었다)
그런데 말이다, 봉봉이는 거의 만 24시간을 참았던 것 같다.
이것은 니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의 결투였다.
나는 봉봉이가 쉬를 해야하는데 해야하는데 하면서 초를 재고 있었다.
하지만 봉봉이는 갖혀있는 케이지에서(케이지가 너무 작았던 것 같다) 자꾸 울기만 했고,
나는 더이상 그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우리 김봉봉씨는 나에게 경멸의 눈초리를 한번 주더니
우리집에서 가장 비쌌던 흰색가죽소파 모서리에다가 다리를 척 올리더니 자랑스럽게 쉬를 하는 것이다.
아.
나는 졌다.
그래.
너는 니가 쉬하고 싶을때 하거라.
나는 치울테니.
니가 쉬를 하든 말든
이제 신경을 안 쓸것이다.
이 고약한 놈.
아 이야기가 또 산으로 빠졌다.
그리하여 봉봉이는 쉬를 참으면서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혼자 집에 있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너무 미안해서,
꼭 강아지 형제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너무너무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체력도 딸리고, 이미 봉봉이 산책을 시키는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봉봉이 산책때문에 마일스와 많이 싸운듯 하다.
나는 어서 봉봉이를 산책시키라고 종용하였고
마일스는 지금 말고 나중에 하겠다고 했다.
나는 지금 당장 하라고 했고
마일스는 그럴거면 니가 하라고 했다.
맞는 소리다.
내가 데려온 내 강아지인데 왜 나는 이리도 귀찮아했을까.
암튼 세월은 흘러 마일스가 고양이를 입양하는데 동의를 하였다.
수개월간의 쪼름과
협박과 논리와 애교로 얻어낸 성과였다.
사실 마일스는 고양이 알러지가 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양이가 많은 쉘터나 고양이가 많은 집에 가면 알러지 약을 먹어야 했지만
그냥 한마리만 있거나 단모종의 경우에는 알러지가 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때는 이때다.
고양이를 데리고 와야징 ㅋㅋㅋ
실제로 우리네씨는 첫눈에 내 눈을 사로잡았다.
삼개월된 아기 고양이
회색과 흰색털
유리창 넘어로 나에게 몸을 부비고 있었다.
아 너구나.
우리는 짧은 상담시간을 거친후
그리고 30분정도 고양이와 놀아본후
고양이 입양을 결정하였다.
마일스도 흔쾌히 내 결정을 따라주었다.
공교롭게도 그때도 내 생일이었다. 2015년 11월 13일
아마도 내가 생일선물로 달라고 졸랐던 것 같다.
사실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면서의 에피소드는
이루 말할수가 없다.
한번은 봉봉이를 잃어버려서 24시간만에 되찾은 경우도 있었고
고양이가 집을 나가서 안 오는 바람에 몇시간을 마음을 졸인적도 있었다.
(이썰은 나중에 풀겠다)
지금 나는 마당이 있는 타운홈에 살고 있는데
우리 고양이는 외출냥이 되었고
우리 강아지는 여전히 마당에다가 쉬를 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마당에 쉬를 할수있게 할까 많은 고민을 하였으나
최근에는 정말 급하면 세탁기앞 배변시트 늘 고정된 자리에 응가와 쉬를 하고 있다.
고마워 김봉봉. 그리고 고네씨.
너희때문에 내가 많이 좋아졌어.
ㅋㅋㅋ마일스는 진짜 미국사람 마인드네. 강아지 일은 강아지일. 봉봉과 네씨가 함께하기까지 이리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니!그나저나 마당이 있는 타운홈 부럽다..ㅎ
답글삭제나도 쉘터를 가봐야겠다 ㅎㅎㅎ
답글삭제그간 에피소드가 많았구나! 재밌어 한번에 쭉 읽힌다
답글삭제나는 봉보이만 귀여워 ~~~~~~
답글삭제마일스도 가끔 고네씨가 아니라 신네씨라고 함 ㅋㅋㅋ 엄마닮았어
답글삭제보람! 원래는 주택으로 이사하고 싶었는데 너무 비싸더라고.... 나중에 너도 돈 많이 모아서 주택 사 ㅋㅋㅋ
답글삭제에바짱 재밌다니 고맙다! 나도 즐겨읽어주니 감사할뿐 :)
답글삭제민정: 강추!!!! 나는 여력만 된다면 큰개도 키워보고 싶었는데 주택이 아니라 포기 ㅎㅎㅎ 싱글패밀리홈으로 이사할수 있다면 큰개도 데려오고 싶다~~~ 리트리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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