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을 달리던 말이라
달리지 않으면 진창에 빠질까
달리고 또 달렸더니
더 이상 달릴 힘이 없어서
깊숙히 침잠하고야 말았다
운이 좋아
주변에 노끈처럼 단단한 지푸라기가 많아서
그것들을 잡아
조금씩 올라왔더니
이제 마른 땅이더라
말은 달리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 버릇이 남아 자꾸 뛰려 하더라
나뭇가지들이 속삭이더라
그만 뛰고 누워서 좀 쉬어
좀 쉬어도 되잖아
늪은 저 멀리 지났으니까
이제 천천히 하렴.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
만 나이로 예닐곱 때 이었을 것이다
작은 언니가 왜 우리집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교환을 안 하냐고 묻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우리는 크리스챤이 아니다.
ㅋㅋㅋㅋㅋㅋ 아, 크리스챤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주중에 집을 비우시는 틈을 타(엄마아빠는 주말부부였다)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어딘가에서 가짜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와서 조립을 시작하였다. (돈은 어디서 난거야)
하나는 중학생, 하나는 당시 국민학생이었고,
그들은 항시 싸우지만 갑자기 의기투합할 때가 많았고,
빨간 볼에 양손이 끈으로 연결된 벙어리장갑에 귀마개나 털모자나 목도리를 하고서는
그리고 아마도 더플코드나 오리털파카(나 솜이 많이 들어간 잠바)를 입고,
또는 오방떡이나 붕어빵 봉지를 한손에 들거나 아님 한입 베어 우물우물한 상태였거나 말거나,
하여 우성아파트 3동 701호의 알루미늄철제대문을 당차게 열어제치며
하얗고도 시원한 겨울바람과 함께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은 매우 흥분된 상태로 큰소리로 또는 작은소리로 엄마에게 또는 나에게 또는 서로에게 계속 말을 하거나 오방떡을 주거나 먹거나 떠들거나 웃거나 하면서
커다란 브라운 박스를 집안으로 들여놓았다.
내 기억으로 그것은 1.8미터나 하는 큰 크리스마스 인조 트리였으며, 그 트리가 들어있는 상자는 적어도 가로 일미터 세로 삼사십센티는 되어보였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상자를 오픈하였고
나는 덩달아 신이나서 옆에서 도와주었는데 나의 행동이 그냥 방해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기둥을 세우고 그리고 토대를 만들어 다시 그 둘을 조립하고
플라스틱 이파리가 꼿꼿히 꽂혀있는 나뭇가지 모형가지들을 그 크기에 따라 밑에서부터 또는 위에서부터 또는 중간에서부터 꼽는 것을 지켜보다가
나도 할수 있을 것 같아서 같이 열심히 꽂았다가
또 그들이 같이 사온 붉고 파랗고 노란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비닐장식들과 은색이랑 금색으로 더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동그란 하지만 떨어뜨리면 깨진다는 공모양의 장식물들을 바라보다가 만져보다가 또 다시 바라보다가
그들이 장식하는 것을 보다보니 나도 용기가 생겨서
내가 생각하기에 좋아보이는 또는 걸맞는 장소에
예닐곱살아이가 손이 닿을 만한 곳에,
분이 날리고 먼지가 날려서 재채기가 날 것 같았지만,
그 예쁘고 아름다운 초록이 빨강이 황금이들을 걸고 또 걸고 또 얹혀놓고 또 떼었다가 다시 걸고, 또 너무 깊숙히 걸어 누군가가 다시 빼서 다시 걸고 나는 또 걸고 또 얹혀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큰언니가 형형색색의 전구를 위에서 아래로 아름답고 우아하게 장식하였고
또 누군가 아마도 작은언니가 또는 엄마가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아 스위치를 켰다.
이미 해가져서 날이 어두웠는지
누군가 벌써 거실등을 껐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단지 내가 기억하는 것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나는 그순간이 그장소가 그모습이 많이 참 너무나 좋았다.
크리스마스 트리 제일 꼭대기에는 적당한 크기의 금별과 은별이 사이좋게 놓여져있었고
트리에는 흰눈과 같은 솜들이
반짝이는 파랑이 초록이 노랑이 빨강이 비닐과 플라스틱 구슬과 동그란 유리들이 어우러져 있었고
트리의 가장 아래쪽에는 전선과 트리 상자와 하얗고 누렇고 검은 종이봉투나 비닐봉지가 어지럽게 놓여있었고 그리고 아마도 희고 검은 먼지가 잔뜩묻은 내 어린 손에는 오방떡이나 붕어빵이 아니면 엄마손이 아니면 그들의 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트리를 우리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고
아마도 매년 크리스마스즈음이 되면 누군가는 장식을 하였고
그것이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되자 내 몫이 되어있었고
그 트리는 주로 12월 초에서 구정(설)이후 까지 거실 중앙에 자리잡고 있어서
친척들이 오거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시면 그 앞에서 같이 사진을 찍고는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한참 후에 내가 더 커서 그래서 아무도 트리를 세우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을때 엄마가 집정리하다가 버리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그 트리가 있었던 금호아파트의 베란다 창고 구석을 열어봐야겠다.
아직도 너는 거기에 있을까
아니야 벌써 없어졌겠지
나의 기억들처럼 조금씩 사라지다가
너는 결국은 사라졌겠지
요앞 쓰레기장으로
이재명 전 성남시장도 애용하는 109동 앞 쓰레기장으로 옮겨져서
큰 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해서
너는 분해되었거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줍줍당했거나
아니면 십중팔구 태워졌거나 묻혀졌겠지
나의 추억들을 가지고 함께
하여 나는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한국에서
갑자기 너를 생각해본다
이렇게라도 글을 남기면
너를 평생 기억할 수 있을까하여.
그리고 그들에게 이 글을 보여주면
나의 잘못된 또는 왜곡된 기억들을 고쳐주거나 보완해줄까하여.
그러면 나는 그때의 내 기억을 다시 되찾아올수 있을테니까
그들은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척 하다가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는,
그들은 내 언니들이고
내 형제이고
내 또 다른 분신이니까
내가 나를 사랑하고 미워했던 만큼
나도 그들을 사랑하고 미워했으니까
아니 내 친구말대로 나는 나를 Ae jeung하니까
ae Jeung하다가도 결국은 Ae jeong하니까
결국 나는 나를 사랑할수밖에 없는
나르시시스트이니까
나르시스트라고 쓰는 것조차 겁내하는
나르시시스트이니까.
용왕이
‘토끼의 간이 뭍에 있을리 없다’는 생물학자의 말을 들었다면.
그래서
용왕이
거짓말을 하는 토끼를 단죄했다면.
아니면
토끼가
간도 쓸개도 빼줄만큼
용왕을 사랑했다면.
결말은 어찌되었을까.
용왕의 병은 나았을까
거북이는 만족했을까
토끼는 좋았을까.
—
내가 용왕이었다면
또는 거북이였다면
또는 토끼였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마음을 하였을까
아니면
나는 어떤 마음을 하고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나는 또 어떤 마음이 되었을까
.
.
그래서
나의 병은 나았을까
나는 만족했을까
나는 좋았을까
—
전래동화가 남일같지가 않은 나는
지나친 감정이입을 하는걸까
지나친 낭만주의자인가
지나친 문학아줌마인가
아줌마가 문학을 읽고
아줌마가 문학을 이해하려하고
아줌마가 문학을 하면
이건 지나친 건가
—
내가 살고 있는 현재가
또는 현실의 모습이
전래동화의 구조와 같음을 인식하면
나의 병은 나아질 것인가
나는 만족할 것인가
나는 좋을 것인가
—
내가 행복하면
너도 행복한가
나의 행복은
너에게도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
내가 슬프면
너도 슬픈가
나의 슬픔은
너에게도 슬픔을 가져다 주는가
정답은
예 그리고 아니오
예 또는 아니오 가 아닌
예 그리고 아니오
Yes & No
용왕의 몸의 병은 나을수도 있지만
그녀는 괴로웠을 지도 모르고
그래서 술독에 빠져서
병이 도졌을지도 모르고
또는 용왕의 몸은 더 위독해졌을 수도 있지만
그 소문을 듣고
용왕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토끼나 거북이나 돌고래나 기니피그가
자신의 간과 쓸개를 빼줄려고 했을지도 모르고
거북이는 그 공을 인정받아
승진해서 자신과 그녀의 가족들 모두 행복해졌을지도
아니만 죄책감에 사로잡혀 스스로 불행해졌을지도 모르고
토끼는 마음이 거북한 채로 미친놈 다보았네 하며 털고 일어서려고 했을지도
아니면 바다공포증이 생겨서 동굴속에 쳐박혀있게 될수도 아니면 증오와 공포에 사로잡혀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었을 수도
아니면 토끼도 죽고
용왕도 죽고
그리고 언젠가 거북이도
플라스틱 빨대에 목이 막혀 죽으면
누군가는 슬프고
누군가는 기억하고
누군가는 잊겠지